먼저 고백부터 하고 시작하죠.
저는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차를 제대로 타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소유한 첫차는 삼성 SM5였고,
그 이후로도 현대차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렌터카로 NF/YF 쏘나타, XG/TG 그랜저,
시승차로 HG 그랜저 잠깐씩 타본 게 다였던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운전 배울 때 엑센트, 아반테 등을 몰아보긴 했죠. ^^
특히 제네시스와 에쿠스는 한번도 운전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해 제가 현대차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서스펜션이 출렁출렁 물침대 같아서 주행시 불안하다...
겉보기에 언뜻 괜찮아 보이지만 내구성 같은 품질은 의문스럽다...
이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제네시스에 대해서는 잘 만든 차라고 알고 있었어요.
오죽하면 많은 분들이 제네실수라고 부르셨겠습니까?
(현대가 실수로 잘 만들었다고 ^^)
하지만 1세대 제네시스는 시승할 기회가 없었는데,
블로그 이웃인 주니 님 덕에 2세대 제네시스를 타보았습니다.
("주니의 Ride & Feel" http://blog.naver.com/ohjunkwon)

 

 



시승을 앞두고 이미 몇차례 시승해보신 주니 님께 물었어요.
"차 괜찮아요?"
주니 님은 대답 대신 싱긋 웃으며 "일단 타보세요"라고만.
사실 이 때 어느 정도 감 잡았습니다. ㅎㅎ

 

시승은 성수대교 남단에서 출발, 강변북로를 따라 구리 지나
팔당대교 건너 미사리 쪽으로 들어와 올림픽대로로 돌아오는 코스.
제가 강남쪽에서 시승할 때면 늘 애용하는 코스입니다.
어느 정도의 직빨, 어느 정도의 코너링을 다 테스트해볼 수 있죠.

 

일단 차에 타는 순간부터 놀랐습니다.
운전석 도어를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시트의 두께.
한눈에 슬쩍 봐도 두툼한 시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경쟁차종으로 언급되는 E클래스, 5시리즈, A6보다 더 윗급입니다.
두께, 가죽의 질, 착좌감, 요추 지지대, 좌우 에어쿠션 같은 편의사항 등등
모든 면에서 훌륭합니다. 이 정도면 독일 3사의 플래그십과 비교할 정도.

 

대시보드의 우드 질감도 많이 좋아졌네요.
기아 K7이 번들번들 부담스런 피아노 마감이었던 데 비해
제네시스의 우드는 딱 적당한 수준의 화려함을 뽐냅니다.
무릇 진정한 럭셔리는 이러한 법이죠.

 

센터페시아나 기어 조작부의 디자인 독창성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아우디와 인피니티가 연이어 바로 떠오릅니다.
기아처럼 BMW의 기어노브를 베끼지 않은 건 상을 주고 싶네요. -.-
한술에 배부를 수 없겠죠. 아이덴티티라는 게 쉽게 쌓이지 않으니...
계속해서 노력하다보면 제네시스만의 무언가를 찾게 되길 빕니다.

 

 


자... 시동을 겁니다. 엔진 스타트~
어? 이게 뭐야? 시동 걸린 거예요?
뉘르부르크링을 다녀왔다고 광고하는 차인데...
이 정도의 정숙성을 지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내주행 도중 정차시 공회전 소리가 거의 안 들립니다.
시동이 꺼졌나? 헛갈려서 확인해볼 정도였어요.

 

성수대교를 건너가면서 슬슬 악셀링에 힘을 줍니다.
가속 페달의 감각은 독특합니다.
세단의 경우 대개 가볍게 쑤욱 밟아지다
거의 다 밟았을 때쯤 한번 더 툭! 하고 더 밀리죠.
그때가 풀악셀.

 

제네시스는 1/3 정도까지 스르륵 쉽게 밀리고
거기서 한번 걸리는 느낌이 들고 다시 악셀링이 됩니다.
어느 정도의 속도까지는 1/3의 악셀링으로 커버가 되는 듯.
330은 모르겠지만 380의 엔진은 충분히 넉넉했습니다.
3.8 6기통 직분사 엔진, 최대출력 315마력, 토크 40.5kg.m.

 

제원상 2톤이라는 데 왜 이리 가뿐하죠?
저속이든 중속이든 고속이든 무겁다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원하는 대로 발끝에 힘을 주면 가볍게 툭툭 튀어나갑니다.
그러면서도 경박하다는 느낌은 아녜요.
쭉쭉 뻗어나가지만 묵직한 맛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서스펜션의 세팅은 아우디에 가깝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보다는 단단합니다.
그리고 요즘의 5시리즈처럼 부드럽고 가볍지도 않아요.
차체의 무게와 넓은 휠베이스, 4륜구동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런 느낌을 갖게 하는 거겠죠.

 

핸들링 역시 일품입니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차체가
운전자가 의도한 대로 유격 없이 민첩하게 돌아가줍니다.
차량이 거의 없는 구간에서 160 정도로 코너링을 해봤는데
현대의 세단이! 몸무게 2톤의 세단이! 칼같이 돌아나갑니다.
이것 참... 시승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놀라게 되더라구요. -.-

 

 


2세대 제네시스에는 처음으로 4륜구동 옵션이 들어갔죠.
HTRAC이라 명명된 이 옵션은 250만 원이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제네시스를 산다면 이 옵션은 무조건 넣겠습니다.
단돈(?) 250으로 이 정도의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원상 연비는 8.5km/l인데 실제 시내주행 연비도 7~8 정도라고 합니다.
차체의 무게와 4륜임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습니다.
물론 고속주행시는 4~5로 떨어집니다. 이건 어쩔 수 없죠.
그동안 언론이나 블로그의 시승기만 봤을 때 가졌었던
삐딱한 시선들이 자꾸만 사라져갑니다. 역시 차는 타봐야 해요. ^^

 

게다가 제네시스에는 수입차 대비 또 하나의 큰 장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만든 차라는 것. 그래서 한국화된 옵션들이 있다는 것.
한글로 최적화된 내비게이션, HUD(헤드업 디스플레이),
여러 가지 공조 기능 등등을 경험하고 나면
쉽사리 수입차를 선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세단'으로서의 실력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녀석이
우리나라 운전자를 위한 편리함까지도 갖췄으니까요.

 

볼보가 처음 도입했던 사각지대 경보시스템(BLISS)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이드미러에만 있는 게 아니라 HUD에도 표시됩니다!
속도를 알리는 숫자 좌우로 깜빡깜빡 경고등이 뜨네요.
주행의 질감, 실내의 고급감, 한국화된 편의성, 안전을 위한 배려...
도무지 흠을 잡을 수가 없는 차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습니다.
첫번째는 엔진 사운드.
이 정도 급의 차량이라기엔 다소 경박합니다.
좀 더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소리를 기대했었거든요.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도 둔탁한 느낌이었고요.
뭔가 신경쓰다 만 듯한 인상이랄까요?

 

가격도 조금만 더 내릴 여지가 없었는지...
7천만 원이면 아무래도 망설여지게 됩니다.
제네시스 차 자체는 정말 훌륭합니다만
그래도 독일 3사 브랜드의 무게감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자, 총평을 내려보겠습니다.
2세대 제네시스는 E클래스나 5시리즈 같은 미들 세단급이 아닙니다.
그보다 한수 위, 플래그십에 가깝습니다.
당근 뉴 S클래스를 넘볼 순 없어요. 하지만 아우디 A8에는 근접합니다.
A8 4.2 TDI 콰트로를 시승할 때의 느낌과 많은 면에서 유사했어요.
묵직하지만 시원하게 달리는 4륜구동의 질감이 특히 그러합니다.

 

현대자동차라는 회사에 대해 실망해온 분이라 할지라도
제네시스라는 자동차 자체에 대해서는 분명 놀라움을 느낄 것입니다.
편견에서 발견으로, 제네시스를 시승한 후
현대자동차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Posted by Jenne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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